혼자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 한참이 지났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일해도 같이 일해도 대표라면 외로운건 사실 디폴트라 새롭다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가족도 있고,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 어딘가 빠진 것 같은 느낌. 뭐가 없어진 건지 한동안 몰랐다. 나중에야 알았다. 회사를 다닐 때는 있었던 사람들, 딱히 친하지도 않지만 매일 마주치던 사람들이 사라진 거였다. 같이 점심을 먹던 팀원, 엘리베이터에서 늘 인사하던 옆 부서 사람, 자주 가던 카페의 그 직원.

깊은 관계도 아니었고, 업무 관계도 아닌 그냥 아는 얼굴들이었다.

약한 연결의 힘 Link to heading

심리학자 Gillian Sandstrom은 오랫동안 ‘약한 연결(weak ties)‘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그의 연구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카페에서 바리스타와 짧은 대화를 나눈 사람과 그냥 기계적으로 커피만 받아간 사람을 비교했더니, 대화를 나눈 쪽이 소속감과 긍정적인 감정이 더 높게 나왔다. 긴 대화도 아니었다. 눈을 맞추고, 잠깐 웃으며 한마디 건넨 것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늘 과소평가한다고.

사실 이건 우리의 직관에 반한다. 보통 ‘중요한 관계’라고 하면 깊은 관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연구는 약한 연결이 많은 날일수록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더 소속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깊은 관계가 아니어도 된다.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얼굴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채운다.

나에게 필요한건 친구가 아니다

프린지십이라는 관계 Link to heading

2025년, 심리학자 Karen Fingerman을 비롯한 연구팀이 흥미로운 개념 하나를 제안했다. ‘프린지십(fringeship)’. 친구도 동료도 아닌 그 관계에 붙인 이름이다.

프린지십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특정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만난다. 서로 반가워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의무는 없다. 연락을 주고받거나 약속을 잡거나 하는 부담이 없다. 그냥 그 공간에서, 그 시간에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매주 같은 요가 수업에서 옆에 매트를 펴는 그 사람. 단골 카페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보이는 닉네임. 이름을 모를 수도 있고, 연락처를 모를 수도 있다. 그래도 없어지면 이상하게 허전한 사람들.

연구팀은 이런 관계가 깊은 친구 관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외로움을 줄이는데 기여한다고 설명한다. 깊은 관계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신경을 써야 하고, 맥락을 공유해야 하고, 감정도 관리해야 한다. 프린지십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가벼움이 오히려 힘이다.

구조가 사라지면 관계도 사라진다 Link to heading

회사라는 조직 안에 있을 때는 이런 관계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을 마주쳤으니까.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혼자 일하기 시작하면 그 구조가 통째로 사라진다. 재택 근무와 원격 근무가 업무 관련 사회적 네트워크 접근을 제한하고, 평소에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고립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그리고 프린지십은 억지로 만들기가 어렵다. 이건 깊은 우정처럼 의지와 노력으로 만드는 관계가 아니다. 반복적인 접촉과 낮은 압력의 공간에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래서 1인기업이나 프리랜서에게는 이 관계를 만들 환경 자체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Link to heading

다행히도 거창할 필요는 없다.

가장 간단한 것부터 떠올려보면, 자주 가는 카페를 하나 정해서 같은 시간에 가는 것. 프린지십은 ‘반복’에서 생긴다. 매번 다른 곳을 가면 얼굴이 익을 시간이 없다. 한 곳을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 알아보게 된다. 거기서부터다.

커피를 받을 때 그냥 받지 말고 한마디 건네는 것도 작은 시작이다. Sandstrom의 연구에서 실증된 가장 작은 단위의 연결. 짧아도 괜찮다. 진짜 관심을 담아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온라인 버추얼 코워킹이나 느슨한 커뮤니티도 방법이다. 깊은 관계를 만들러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얼굴을 반복적으로 비추는 게 목적이다. 특정 목적이 있는 공간 — 독서 모임, 동네 운동 클래스, 같은 분야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채널 — 은 대화 압박이 없어서 오히려 프린지십이 생기기 좋다.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한 것. 집에서만 일하면 이런 관계를 만들 물리적 기회 자체가 없다. 어딘가 나가는 루틴을 만드는 것 자체가 시작이다. 생산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 냄새를 맡기 위해서.

새로운 친한 친구가 꼭 필요한건 아니다 Link to heading

Gallup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직장인 5명 중 1명이 하루 중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혼자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런데 이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꼭 새로운 친한 친구가 생겨야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깊은 우정은 에너지가 있을 때 만들어진다. 지금 당장 그게 어렵다면, 일단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없고,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반가운 사람. 그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채워준다.


코드는 디버깅하면서 마음은 방치하고 있진 않나요? 에러 로그 읽듯 나의 마음과 감정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디버깅 마인드>로 나의 마음을 읽고 살피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디버깅 마인드>는 모비인사이드에 기고하는 시리즈형 컨텐츠로 스타트업 구성원, 1인 메이커, 프리랜서들이 일과 삶 사이에서 겪는 마음들을 디버깅하는 심리학 콘텐츠입니다.

글 우주 threads X(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