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누가 그런 세계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늘도 어떻게든 지루함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기 위해 유튜브를 켜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열어봅니다. 지루함이 찾아오면 단 몇초만에 그걸 밀어낼 수 있어요.

지루함

일상의 이런 행동말고도, 삶 전반에서 더 정교한 방식으로 ‘지루함’을 피해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제가 그렇게 지루함을 피해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늘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떠올리고, 재밌을만한 일을 찾고, 끊임없이 배우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새로 시작하면서 지루함을 피해왔습니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 만큼, 하루하루 꾸준히 해나가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책인데요. 세상에 넘쳐나는 자기 계발서들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이 책에 언급된 몇 가지들은 꽤 유용했습니다. 특히 ‘지루함’에 대한 언급에서요. 뜨끔했습니다.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옮겨다니면서 실제 Action을 하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상상해 보는 Motion만 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지루하지 않기위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고 있나요 Link to heading

제가 언제부터 그런 패턴에 익숙해졌나 생각해보니, 대행사에서 기획 업무를 맡은 시절부터입니다. 매번 새로운 클라이언트,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제안.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고 실행을 상상하며 제안서를 쓰는 일을 반복했어요. 들숨에 새로운 과제, 날숨에 위기들이 생겨나고 붙고 떨어지는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오니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게 좋은 줄 알았어요.

문제는 그 패턴이 혼자 사업을 하면서도 이어졌다는 것.

꾸준하게 한 가지를 해야 하는 일들이 지루해지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들거나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나의 비즈니스는 <계획을 세우고 상상해 보는 Motion>의 바다에서 떠다녔어요. 하루하루 꾸준하게 하는 것이 지루해 다른 아이디어를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의 변덕스러움은 ‘활기참’, ‘에너지가 넘친다’, ‘아이디어가 많다’ 같은 긍정적인 말로 강화되고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Action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어요.

이게 바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말한 Motion과 Action의 상황입니다. Motion은 계획하고, 전략을 세우고, 공부하는 것. Action은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동. Motion은 그 자체로 결과를 만들지 못합니다. 아무리 정교한 계획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그렇다면 저는 왜 Action보다 Motion에 머물렀을까요. 왜 우리는 자주 Motion의 단계를 좀더 편안하게 느낄까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이유 Link to heading

어찌보면 그것이 ‘실패’를 당장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계획이나 상상도 그 자체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Motion은 실패할 위험이 없어요.

계획을 세우거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동안은 판단받지 않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는 틀릴 수도 없죠. 하지만 실행하는 순간 비로소 현실과 부딪히고, 잘 안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미루기 위해 Motion을 계속 이어가는건 아닐까요.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게 심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1인기업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패턴이 특히 강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해야 하는 구조에서, 실패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니까. 그러니 실행을 미루고, 더 나은 계획을 찾는 쪽이 심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느껴집니다.

지루함을 피하면, 어떻게 될까 Link to heading

문제는, 지루함을 계속 회피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2024년 노터데임 대학교 연구팀이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어요. 지루함을 피하면서 ‘버텨내려’ 할수록, 그 지루함의 영향이 오히려 이후 작업에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인데요. 지루함은 피하면서 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깐 미뤄졌다가 나중에 더 강하게 돌아온다는 겁니다. 지루함을 피하려고 새 자극을 찾더라도 그 자극이 끝나면 지루함은 다시 찾아오고, 내성만 높아질 뿐입니다.

심리학자 Sandi Mann은 스마트폰으로 지루함을 없애려 할수록, 뇌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바로 스크롤을 내리면, 뇌는 스스로 지루함을 해결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그 상태가 반복되면 자극이 없을 때 버티는 능력이 조금씩 줄어들고, 결국 더 짧은 지루함에도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지루함의 쓸모 Link to heading

여기 ‘지루함’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루함 자체가 뇌를 다른 방식으로 작동시킨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지루함은 단순히 견뎌야 할 불편함이 아니게 됩니다. 지루한 작업을 마친 뒤에 창의적인 과제를 수행하면, 흥미로운 일을 하다가 곧바로 창의적 과제로 넘어간 사람들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Gasper와 Middlewood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어요. 지루함이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감정’으로 작용하면서, 평소에는 연결되지 않았던 생각들을 연결하는 확산적 사고를 촉진한다는 겁니다. 연구들은 반복적으로 같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Mann & Cadman, 2014; Gasper & Middlewood, 2014)

뇌가 특별한 자극 없이 쉬는 동안, 억눌려 있던 생각들이 표면으로 올라오고 연결되지 않았던 것들이 조용히 연결되기 시작해요. 지루함은 뇌가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시도입니다. 그 시도를 계속 끊어버리면, 우리는 그 과정을 경험할 수가 없어요.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루함은 ‘이게 의미없다’는 신호가 아니라, 뇌가 자동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그 지루함을 버티고 지나가면, 그 다음에 다른 것이 열리기도 합니다. 지루함이 ‘창의성의 연료’가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지루함을 받아들이기 Link to heading

물론, 모든 지루함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루함이 ‘이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신호일 때도 있으니까요. 그 둘을 구분하는 게 먼저겠죠. 지금 하는 일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아래 질문들을 먼저 꺼내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일이 나에게 재미있는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 이 일을 하는 동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적이 있었나?
  • 다른 일들보다 이 일이 내게 더 많은 것을 돌려주고 있나?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있다면, 지루함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것이 됩니다. 하기 싫은 날에도, 지루한 날에도, 그냥 앉아서 하는 것. 그 반복이 조금씩 쌓이는 것. 그게 바로 Motion이 Action이 되는 경로입니다.

지루함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받아들일 수는 있어요.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꿉니다. 오늘 하루, 나에게 찾아오는 지루함을 다르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코드는 디버깅하면서 마음은 방치하고 있진 않나요? 에러 로그 읽듯 나의 마음과 감정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디버깅 마인드>로 나의 마음을 읽고 살피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디버깅 마인드>는 모비인사이드에 기고하는 시리즈형 컨텐츠로 스타트업 구성원, 1인 메이커, 프리랜서들이 일과 삶 사이에서 겪는 마음들을 디버깅하는 심리학 콘텐츠입니다.

글 우주 threads X(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