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나’의 죽음을 떠올려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수시로 떠올려보자고 할만큼 힘차게 장려할만한 것도 아니죠. 하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죽음과 그 이후를 떠올려보면 이 하루와 이 시간이 온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한번쯤은 핸드폰을 내려두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도 끄고 ‘죽음’을 생각해볼만합니다.
대단한 각오나 다짐, 촘촘한 계획을 먼저 세우는 대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하지 않았던 방식입니다. 최소한의 계획이란 것도 없었으니 세상이 ‘장려하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핵심 기능이니 수익 모델이니 MVP니 하는 지겹도록 들어온 말들도 다 걷어내고, 그저 며칠만에 사이트를 만들고 산책삼아 포스트잇에 몇자 적어 밖으로 나가 몰래 붙여두었습니다. 뭐든 영원할 것처럼 살아온 나의 착각을 깨닫고 잠깐 멈춘 그 하루 덕분에, 라스트노트는 시작되었습니다.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라스트노트를 업데이트했습니다. 어떤 것이든 ‘하기 좋은 때’라는 것이 정해져있진 않지만, 11월은 특히 이 프로젝트를 다시 손보기엔 좋은 시점이었습니다. 계절적으로도 그렇고 해가 넘어가기 ‘직전’도 아니니 어떤 것이든 다시 추스리기 좋은 때. 시작할 때 품은 마음을 다시 떠올리면서 사이트 구조나 기능들을 정비했습니다.
라스트노트에 남겨질 기록과 기억 Link to heading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내 묘비명에는 어떤 말이 남게될까. 나는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떠올려봐야합니다. 라스트노트는 이 질문에 대해 답변을 고민하는 시간을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라스트노트는 먼저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추모 페이지이자, ‘살아있는 지금’의 기록까지 함께 담는 공간입니다. 내가 남긴 메모, 짧은 노트, 하루의 감정, 마지막 날을 가정해보며 적어본 문장들. 이 모든 것이 결국 누군가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를 위한 공간 Link to heading
나의 페이지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볼 수 없도록 했습니다. “나의 오늘을 기록하는" 이 공간에는 간단한 일기나 메모를 남겨둘 수 있고 미래로 보내는 편지들을 저장할 수 있어요. 편지는 이메일이나 실물 편지로 남길 수 있습니다.

오늘의 노트, 미리 써보는 묘비명과 부고문, 미래로 보내는 편지 등 내가 떠난 이후 공개되거나 전달될 수 있는 글들이 한눈에 정리되도록 재구성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설정해두면 내가 더이상 나의 페이지를 관리할 수 없을때 내가 쌓아둔 기록을 사전에 설정한 조건에 따라 열람하거나 대신 관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어떤 하루에 적은 짧은 문장, 마음이 복잡했던 날 쓴 노트, 미리 써보는 마지막 인사. 이런 기록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건네지도록 했어요.
미래로 보내는 편지 Link to heading
나의 페이지에 ‘미래로 보내는 편지’가 추가되었습니다. 내가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누군가에게 정해진 날 보낼 수 있는데, 편지들은 전용 공간에 보관되었다가 지정된 날짜에 수신인에게 등기로 발송합니다.
물론 내가 나에게 편지를 남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1년이나 2년 뒤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먼저 감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편지의 내용은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지만,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면 ‘나의 부고문’을 상상하며 적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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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편은 규모도 크고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프로젝트의 모양새나 기능을 손보는 것보다, 의도와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구성하고 표현들을 고민하는게 더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이 곳은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거나 나의 죽음을 미리 떠올려보는 공간이니, 사이트의 작은 표현이나 구성들을 너무 무겁지도 않게 너무 가볍지도 않게 균형을 잡는데에 가장 많은 신경이 쓰입니다. 아무래도 ‘죽음’이라는 것이 가진 무게 때문이겠죠. 남겨둔 계획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실행할 예정입니다. 많은 의견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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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노트는 내 묘비에 남겨질 글 한줄을 미리 생각해보자는게 출발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먼저 떠난 사람들에게도, 내가 떠난 뒤 남아있을 사람들에게도 메시지 한 줄 남길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by wo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