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스터츠 박사의 눈빛 때문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를 보다가 잠깐 화면을 멈췄다.
뒷면까지 그대로 투과해 보일 것 같은, 그런 눈빛. 그건 분명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분석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냥 보고 있는 눈이었다.
조나 힐이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심리상담가를 인터뷰하겠다고 했을 때, 스터츠는 흔쾌히 응했다. 둘은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약 올리고, 웃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조나 힐의 눈빛이 촉촉해지고, 스터츠는 자신의 동생 얘기와 파킨슨병을 꺼냈다. 이 대화들의 경계를 나는 정확히 짚을 수 없었다. 치료실 같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냥 대화도 아니었다.

나는 오랫동안 심리상담이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적절한 침묵을 지키는 것. 전문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그게 프로페셔널이라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스터츠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도구들- Part X, 삶의 힘, 그림자- 을 작은 카드에 그리면서 설명했다. 마치 지도를 건네듯이. “이건 네 문제야"가 아니라 “자, 이건 내가 발견한 지형이야, 같이 볼래?“라는 태도였다.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가볍고 자유롭게 먼저 들어오는 방식.
그 눈빛이 가능했던 건, 아마 그가 ‘판단하기’를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냥 존재로 마주하는 것. 텅 빈 눈은 그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미리 채운 것이 없는 눈이다.
좋은 상담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기법보다 먼저 태도. 분석보다 먼저 현존. 상대가 말을 다 꺼내기 전에 이미 어딘가에 분류해두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열어두는 것.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있을 때마다, 스터츠의 그 눈빛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무언가를 잡으려 하지 않고, 그냥 담으려 하는 눈.
글 우주 threads X(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