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처음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갓 나온 따끈한 운전면허를 품고 밤마다 부모님 몰래 집 차로 길을 나섰더랬죠. 주 목적지는 집에서 가까운 친구네 동네였습니다. 구기터널을 지나 서울예고가 있는 그 동네의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정자 앞에 차를 세워두고 캔커피를 먹고오는게, 당시 운전 연습을 위한 좋은 구실이었습니다.
어떤 용기로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는지 이제 가물가물하네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은 잔뜩 들어가 있고, 차선 하나 바꾸는 것도 떨렸습니다. 신호 대기에 걸려서 차선의 맨 앞에 서는것도 어찌나 부담스럽던지요. 20년도 넘은 지금은 운전이 그저 자연스럽습니다. 제 차가 아닌 것도, 해외에서의 운전도- 면허가 허락하는 한 모두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며칠 전 운전을 하면서 ‘운전’이 혼자 일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긴장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만의 리듬이 생기죠. 운전하면서 배운 것들이 요즘 제 삶과 겹쳐 보여 몇 가지 적어봅니다.

1. 시작하면 시작된다 Link to heading
첫 프로덕트를 출시했을 때를 아직 기억합니다. 떨렸고, 설레었고, 무엇보다 부끄러웠어요. 그 감정들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도 생생합니다. 힘들 때마다 “그래도 시작은 했잖아"라고 제게 말하곤 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최초 효과(Primacy Effect)‘라고 부릅니다. 첫 경험은 뇌에 특별하게 기록되고,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강력한 참조점이 된다고 해요.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도 그랬어요. 엔진 시동을 걸고, 기어를 D로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다음이 펼쳐집니다. 핸들을 돌려야 하고, 신호를 봐야 하고, 속도를 조절해야 하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그다음은 저절로 펼쳐지니까요.
2. 어디로 갈지 정해야 길이 보인다 Link to heading
목적지가 없으면 운전대를 잡을 이유도 없어요. “어디든 좋아, 그냥 달리고 싶어"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 차에 오릅니다.
일도 마찬가지죠. “성공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만으로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6개월 내 월 매출 1000만원"처럼 구체적인 목표가 있을 때, 오늘 해야 할 일이 보입니다.
저는 요즘 진행하는 프로덕트 목표를 이렇게 정했습니다. “3월까지 유료 사용자 30명.” 이렇게 정하고 난 후 월별과 주간 목표를 정하고 할일 목록을 짭니다. 그렇게 해야 오늘은 랜딩 페이지를 고쳐야 하는지, 콜드 메일을 보내야하는지가 명확해집니다.
3. 잘 간다고 생각할 때 탈이 난다 Link to heading
운전 4년 차쯤 됐을 때였나. 차로 출퇴근하면서 운전도 익숙해졌겠다 “이제 운전 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첫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주차할 때 뒤를 제대로 안 보고 후진했던 거죠.
재밌는 건, 심리학자 David Dunning과 Justin Kruger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능력이 중간쯤 올라왔을 때 자신감이 급격히 치솟고, 정작 진짜 전문가들은 더 조심스러워진다고 해요.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유능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인지 편향 현상)
사업도 그랬습니다. 별 생각없이(?) 만든 첫 제품이 팔리기 시작했을 때, “이제 감이 왔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로 다음 제품을 서둘러 만들었습니다. 시장 조사도 대충, 검증도 대충. 결과는 참담했죠.
지금은 일이 잘 풀릴수록 “혹시 내가 뭘 놓치고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잠시 떨어져서 이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보려고 시도해봅니다. 잠깐의 성공인 것에 들뜨지 않고, 취하지 않고 다시 들여다보려고해요.
4. 내가 불편하면 옆자리는 더 불편하다 Link to heading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압니다. 운전자가 긴장하면 차 안 전체의 공기가 달라진다는 걸요. 급브레이크, 급가속, 불안정한 핸들 조작. 운전하는 사람은 집중하느라 못 느끼지만, 옆에 탄 사람은 다 느낍니다.
혼자 일한다고 완전히 혼자인 경우는 드물죠. 함께 일하게 되는 동료들이 있기도 하고, 고객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제가 불안하면 그 불안이 고객 응대에도 묻어나오고, 파트너들과의 대화에도 묻어납니다. 얼마전, 어떤 고객이 제게 물었습니다. “혹시… 이 서비스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 없으신가요?” 아차 싶었어요. 되돌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분은 분명 제가 만든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어했지만, 저의 걱정이나 불안이 이미 전해진뒤였습니다.
요즘은 제 컨디션을 먼저 챙기려고 합니다. 제가 여유로워야 주변 사람들도 편하니까요.
5. 길게 이어진 커브길은 멀리 보며 벗어난다 Link to heading
처음 운전 배울 때, 높은 도로나 인터체인지의 커브길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바로 눈 앞의 도로만 보면서 계속 브레이크를 밟았어요. 그런데 그 때 옆자리 있던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차 앞 말고 커브 끝이나 바깥쪽 커브를 봐. 그쪽을 보면서 살짝 가속해. 커버길의 우측에 차를 약간 붙이고.”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커브에서 가속이라니? 하지만 이제 압니다. 멀리 출구 방향이나 커브의 바깥쪽을 보면서 아주 약간 가속을 밟으면 차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고 커브길을 부드럽게 빠져나갈 수 있어요.
사업 위기도 비슷했습니다. 눈앞의 문제에만 갇혀서 예민해져있으면 브레이크만 밟게 돼요. 계속 움츠러들죠.
프로젝트 하나가 완전히 꼬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매출도 안 나오고, 유저 이탈도 심했어요. 문제가 뭔지 추측하고 나열하고 모든 걸 동시에 해결해보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그런데 멘토가 물었어요. “3개월 후엔 어떤 모습이면 좋겠어?”
그 질문이 저의 시야를 바꿨습니다. “유저 50명이 매일 쓰는 제품"이라는 출구가 보이니까, 지금 당장 해야 할 게 명확해지더라고요. 유저들의 니즈를 ‘추측’하는 기능 추가는 멈추고, 기존 유저 10명과 매일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 뇌는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그래서 눈 앞 문제에만 몰두하면 평소엔 안 하던 실수를 하게 되요. 위기일 때는 오히려 시선을 멀리 두는 게 필요합니다. 차의 바로 앞이 아니라 이 커브길의 출구를 인식하고 커브 바깥쪽을 보면서 그쪽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6. 막히면 차라리 쉬어간다 Link to heading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히면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됩니다. 악셀을 밟아봐야 앞차 뒤범퍼에만 가까워질 뿐이죠. 조금 빨라보이는 차선으로 억지로 끼어들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일도 그래요. 막히는 상황이 오면 멈추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가는 것도 아니고 멈춘 것도 아닌 그 상태가 지속될때는 그 길에서 벗어나서 쉬는게 더 낫습니다. 쉬는 게 나약함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잠시 손을 떼고 환경을 바꾸거나, 산책을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는게 다시 시작하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막힌 길에서 악셀을 밟는다고 길이 뚫리지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졸음 쉼터나 휴게소에서 쉬고, 다시 길을 나서는 게 더 나은 방법입니다.
7. 길을 잘못 들었을 땐 그냥 간다 Link to heading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유턴하세요"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못할수도 있죠.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 게 항상 답은 아닙니다. 그냥 가는 게 나을 때도 있어요. 길은 어차피 이어지니까요.
기획 단계에서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3개월을 갔던 프로덕트가 있었습니다. 중간에 알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만들어진 상태였죠. 처음부터 다시?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습니다.
그냥 갔습니다. 잘못된 길이지만 일단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결과는? 예상과 다른 고객들이 찾아왔고, 예상과 다른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실패가 아니라 다른 성공이었던 거죠. 중요한 건 다시 방향을 잡는 것이지, 자책하며 멈춰 있거나 억지로 핸들을 트는 게 아닙니다.
8. 모든 길은 이어진다 Link to heading
남들은 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게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국도로, 골목길로 돌아가는 것 같고요. 늦는 것 같아서 불안해집니다.
SNS에서 “3일 만에 만들어서 바로 매출 100만원"같은 글을 볼 때마다 위축됩니다. 나는 왜 6개월째 이러고 있나 싶어서요.
심리학에서 이런 비교를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라고 부릅니다.(Leon Festinger)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나 상황과 비교하면서 동기를 얻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불안과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고 해요. 특히 SNS에서 보이는 건 성공의 ‘하이라이트’뿐이죠. 그들의 뒷이야기를 찾아보면, 무수히 많은 실패와 고난들이 있습니다. 안보여주거나 숨길 뿐이에요. 지금 보이는 건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성공의 단면일 뿐입니다.
모든 길은 결국 이어지고 어딘가에 다다릅니다. 먼저 출발한 사람보다 조금 늦을 뿐이에요. 지도대로 온 사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고요. 원래 가려던 길로 가지 않았기때문에 보게되는 풍경도 있습니다. 어쨌든 아직 출발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앞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당신도 가고 있습니다. 속도가 다를 뿐이에요.
아버지는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제게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운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야.” 완벽하게 운전하려고 긴장하거나 또는 반대로 방심하면 사고가 난다고요. 여유를 갖고, 주변을 보고, 필요 이상으로 속도를 높이지 않고, 쉬거나 돌아가도 된다는 마음으로 운전하라고요. 혼자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핸들은 이미 당신 손에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는 당신이 정합니다. 천천히 가도, 돌아가도,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은 운전석에 있으니까요.
코드는 디버깅하면서 마음은 방치하고 있진 않나요? 에러 로그 읽듯 나의 마음과 감정도 살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디버깅 마인드>로 나의 마음을 읽고 살피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디버깅 마인드>는 모비인사이드에 기고하는 시리즈형 컨텐츠로 스타트업 구성원, 1인 메이커, 프리랜서들이 일과 삶 사이에서 겪는 마음들을 디버깅하는 심리학 콘텐츠입니다.
글 우주 threads X(twitter)